받고, 올리고, 때리고 下

[381] 2021. 3. 2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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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매력 있는 배구의 포지션을 얘기해볼까 한다. 배구에는 세터, 레프트, 라이트, 센터, 리베로 총 다섯 개의 포지션이 있는데 각 포지션이 지닌 매력이 다 다르다.

 

먼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터는 리시브 또는 디그로 전달되는 공을 공격수에게 올리는 역할을 한다. 한 마디로 전체적인 경기 운영을 해나가는 일종의 설계자 역할이다. 내가 환장하는 게 있는데 세터가 공격수들에게 손가락으로 싸인 보내는 거. 이거 진짜 간지난다. 진짜 멋있다. 그래서 중계에서 이런 화면 잡아주는 거 진짜 좋아한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세터의 역할이 중요한데, 세터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잘 되던 공격도 안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터의 흔들림을 커버하는 공격수도 있다) 반대로 흔들리는 공격수를 살릴 수 있는 것도 세터다. 그리고 좀 전에 언급한 2단 패스 페인트…. 진짜 좋아한다. 그래서 경기를 볼 때 세터 위주로 보게 되는 것도 있다. 배구를 처음 보던 때 좋아했던 선수도 세터였고, 늘 세터를 좋아했고, 지금도 세터를 좋아한다.

 

그다음은 레프트다. 레프트는 보통 ‘살림꾼’이라고 많이 언급된다. 수비도 해야 하고, 공격도 해야 하는 바쁜 포지션이다. 세터에게 공을 전달하는 리시브를 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또 상대방의 서브가 집중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본인이 리시브하고 공격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또 겁나 멋있다. 특히 ‘앵글샷’, 대각선 방향으로 엄청난 각을 내서 때리는 공격이 일품이다. 그런 공격을 보면 감탄만 나온다. 어떻게 저런 각을 내지? 또 멋있다는 얘기만 하게 된다. 세터와 호흡이 아주 잘 맞아서 멋진 공격이 나올 때도 있지만 호흡이 언제나 잘 맞을 수는 없다. 레프트들이 좋지 않은 공을 때릴 때가 있는데 이때 ‘만들어서 때린다’라고 할 만큼 멋진 공격이 나올 때도 있다.

 

라이트는 레프트와 함께 윙 공격수로 팀에서 공격을 담당한다. 수비를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경기를 보면 수비도 많이 하는 것 같다. 확실히 서브 리시브 상황에서는 리시브에 잘 가담하지 않고, 공격 비중이 높다. 한국 리그에서는 라이트 포지션이 대부분 외국인 선수인 경우가 많아서 팀이 어려운 핀치 상황에서는 라이트에게 공이 많이 올라가는 편이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이트의 공격 중 가장 좋아하는 공격은 라이트 중앙 백어택인데, 갑자기 뒤에서 짠! 내가 공격할 거지롱! 하고 나타나는 느낌이다. 이때 폼이 진짜 장난 아니게 멋지다. 이건 영상으로 봐야 한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센터는 블로커라고도 한다. 블로커라고 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역할은 상대방의 공격을 막는 블로킹이다. 상대의 회심의 공격을 거의 장벽을 세우다시피 차단해 버릴 때 역시 ‘손맛’을 느끼는데, 나도 경험해 보고 싶은 느낌이다. 상대 공격수를 흔들게 할 수 있는 수비이자 공격인 셈이다. 상대 세터의 공격을 읽고 공격수가 올 자리에 미리 가서 기다렸다가 하나, 둘 하며 뛰어올라 상대 공격수의 공을 상대 코트로 내리꽂는 블로킹은 정말 최고다. 블로킹에 성공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어서 수비이자 공격이라고 했지만, 이들이 블로킹만 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속공이라는 공격도 구사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빠른 공격이다. 시간차 공격과 다르게 한 박자 빠른 공격 방법이다. 이때 센터는 빨리 뛰어서 상대편 블로커들의 블로킹이 올라오기 전에 공격한다. 이것도 성공하면 진짜 짜릿하다.

 

리베로는 리시브도 해야 하고, 디그도 해야 한다. 어택커버도 해야 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쁜 포지션이다. 레프트도 리시브에 가담하지만, 리베로도 리시브 라인을 함께 만든다. 그리고 세터의 근처까지 공을 잘 배달해주는, 점수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방패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끈끈한 수비는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고, 설령 점수를 내준다고 하더라도 끈끈하고 끈질긴 수비 끝에 내준 점수는 상대에게도 쉽지 않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리베로는 가끔 순간이동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 점수 내주겠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멋진 디그를 하고, 경기장 끝까지 빠르게 달려가서 기어코 공을 공중으로 올려놓는다. 그래서 코트에서 가장 많이 구르고, 코트에 가장 많이 엎어지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배구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땐 글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랐다. 나 배구에 정말 진심인가보다.

 

아무튼, 여자배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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