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을 읽고, 넷플릭스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내용을 제 마음대로 바꿔 봤습니다. 이 글을 쓰게 만든 책 속 구절도 함께 덧붙입니다.
"신고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피해자들은 정말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 형사 사법 기관을 믿고 신고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이며, 피해자에게 그 점을 짚어 주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354p)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어. 마치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았지.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았어.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했고, 나더러 거짓말쟁이라고 했어. 나는 아니라고 말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어. 그냥 거짓말쟁이가 되려고 했어. 그때 너의 메시지를 받았어. 신고한 내가 대단히 용기 있다고 말해주면서 시작한 장문의 메시지를 읽고 조금 힘이 났어. 그래도 여전히 맞서 싸울 의지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좀 힘이 났어. 그날도 면담을 겨우 끝내고 밖으로 나왔지. 네가 있었어. 오랜만에 보는 나를 보면서 활짝 웃었지만 나는 너의 얼굴에 가득한 걱정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어. 손을 흔들며 내게 다가온 너는 일단 나를 꽉 끌어 안아주었어. 그때 느꼈던 따뜻함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그날 너는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며 나를 마트로 데려갔어. 장을 보고 집으로 함께 걷는 내내 안도감이 들었어. 굳이 말로 하지 않았어도 넌 날 믿고 있다는 게 느껴졌거든. 파스타를 먹으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처음엔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파스타가 맛있다는 얘기들을 하다가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이야기의 결론은 싸워보자는 것이었어. 힘이 되어줄 테니까.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는데, 그냥 거짓말쟁이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날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밤새 고민했지. 노트북을 켜놓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찾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어. 그리고 우리가 함께 세운 계획 덕분에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새끼는 감옥으로 갔지. 사실 계획보다는 무력감에서 빠져나온 게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어. 무기력에서 나를 꺼내줘서 고마워. 이 얘기를 들으면 넌 당연한 거라고 말하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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