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 봤다. 배구의 매력이 뭔지.
일단 배구는 역시 팀 스포츠라는 게 가장 매료되는 지점이다. 배구에서 느낄 수 있는 연결감, 끈끈함, 끈끈하다 못한 끈질김이 좋다. 여타 팀 스포츠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배구에서 이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경기 규칙에 연결의 횟수가 명시되어 있을 만큼 ‘연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으로 하는 팀 스포츠에 연결이 안 중요한 종목이 있냐고 물음표를 띄울 수도 있겠지만, 3회 이내에 공을 상대 진영으로 넘겨야 한다는 규칙 덕분에 더 심장이 쫄깃해진 채로 경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횟수 제한 때문에 한 번의 미스가 바로 실점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한 번의 연결을 위해 경기장 끝까지 빠르게 달려가 공을 받아내는 선수들의 멋진 수비를 볼 수도 있다. 멋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다 함께 만들어 가는 점수인 게, 다 함께 만들어 가는 경기인 게 좋다.
그리고 이게 실제로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한때 내가 사는 지역에 배구 동호회가 있는지 찾아보았던 때가 있었다. 동호회 분위기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문의도 해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언젠간 직접 배구 경기를 해볼 거다. 며칠 전엔 나 같은 여자들을 모아 배구 동호회를 만들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생각만 해도 재밌겠다. 최근에 여성 전문가에게 배구를 배울 수 있는 아카데미가 있다는 걸 알았다. 배구제왕 김연경 선수가 운영하는 KYK 스포츠 아카데미에서 국가대표 출신 여성 코치님께 배구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같이 배구 보는 친구랑 꼭 배우러 갈 거다. 친구도 솔깃해했다. 진짜 제대로 배우면 얼마나 재밌을까. 기대된다. 배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한참 사그라들었었는데 요즘 다시 불타고 있다. 얼마 전에 책꽂이에 자리 잡고 있던 배구공이 눈에 들어와 하나 집어서 그걸로 리시브와 토스 연습을 하고 있다. 집에 배구공이 많다. 배구 경기를 보러 가면 선수들이 싸인볼을 날려주는 데 그렇게 받은 거, 산 거, 시즌권 끊어서 받은 거(이것도 산 거겠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집에 있는 배구공이 여섯 개가 되었다. 오래돼서 바람이 많이 빠진 데다가, 공인구와 같은 크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걸로라도 배구 하고 싶은 마음을 푸는 중이다. 주변에 마음 놓고 공을 튕길 수 있는 실내체육시설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실내체육시설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는 이 시국도 미워진다.
또 경기 자체가 순간순간의 흐름과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누가 이길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잘하다가도 흐름을 뺏기면 속수무책으로 점수를 내주고, 못 하다가도 분위기를 뺏어 오면 연속 득점을 손쉽게 해낸다. 경기를 보다 보면 흐름을, 분위기를 뺏기지 않으려 애쓰는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흐름과 분위기를 바꾸는 점수 한 점이 나올 때 진짜 짜릿하다. 특히 서브 득점으로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서브에 대해 할 말도 산더미다. 엄청나게 강한 힘을 싫은 서브부터 예리한 코스를 공략해 수비가 어렵게 만드는 서브까지.
아, 서로 친한 선수들끼리 하는 맞대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친한 친구의 공격을 블로킹한다든가, 친한 친구의 블로킹을 공격으로 뚫어낸다든가 하는 친구 맞대결. 진짜 재미 포인트다.
배구는 속도감이 있는 스포츠이다. 아까 말했듯이 3회의 터치로 공을 넘겨야 하는데 그래서 득점이 다른 스포츠보다 빨리 난다. 경기를 보다가 잠깐 한눈을 팔면 득점이 나 있는 상황도 종종 있다. 상대방의 서브를 받아서 올리고 때리는 이 세 박자가 딱 맞아떨어질 때 완벽한, 선수들도 만족할 만한 득점이 나온다. 이런 속도감 속에 속도감을 더 증폭시키는 공격이 있는데 바로 속공이다. 상대편의 센터(블로커)들이 블로킹하기 전에 득점을 내는 공격 방법인데 이걸로 득점이 나면 진짜 짜릿하다. 흔히 블로킹을 잘 잡거나, 공격을 잘 때렸을 때 선수들이 ‘손맛을 느낀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멋진 공격이 나올 땐 선수들이 느낀 손맛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듯하다. 속도감이 힘을 더해볼까? 역시 힘 없이는 모든 스포츠가 진행이 안 되겠지만 배구에서의 힘은 좀 다르다. 그 힘을 소리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인데. 힘이 느껴지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서브하기 전에 공을 바닥에 튕길 때 나는 소리, 그리고 제대로 맞아 들어가서 완벽한 공격이 나올 때 나는 퍽 소리가 있다. 선수마다 공격하는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난 왠지 모르게 힘을 가득 실어 때리는 공격이 너무 좋다. 그때 나는 퍽 소리는 위협적일 만도 하지만 그때 내 입에서는 와, 짱이다 라는 말 밖엔 안 나온다. 그냥 내가 힘센 여자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다.
센 힘으로만 공격하진 않는다. 또 속도감만 가지고 공격하지도 않는다. 배구에는 페인트라고 하는 공격 방법이 있다. 공격수가 자신에게 올라온 공을 손끝으로 상대편 수비수가 없는 쪽으로 밀어 넣는 공격이다. 상대 수비수는 공격수가 강하게 때릴 거라고 예상한 상태에서 페인트 공격이 나오면 수비하기가 쉽지 않다. 쉽게 말해 상대 팀을 속이는 공격이다. 페인트로 득점을 낼 때도 엄청 짜릿하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페인트가 있는데 바로 세터의 2단 패스 페인트이다. 보통 세터는 공격을 잘 하지 않는 포지션이다. 이들의 역할은 공격수에게 공을 올려서 공격이 이루어지게 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2단 패스 페인트는 공격수에게 토스할 것처럼 하다가 바로 상대편 코트로 공을 넘겨버리는 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격이다. 자주 나오는 공격이 아니어서 더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내가 세터 포지션을 특히 더 좋아하는 이유도 있다)
반대로 속도감을 조금 늦춰서 공격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시간차 공격인데, 이 공격은 전위에 있는 공격수들이 공격할 것처럼 점프하지만 후위에 있는 선수가 공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상대 블로커들이 전위 선수의 점프에 속으면 후위 선수는 노 블로킹 상태에서 공격해 득점할 수 있다. 간혹 따라오는 블로커들도 있지만 공격하는 선수의 타점이 훨씬 위에 있어서 그래도 수월한 편으로 득점해낼 수 있다. 공격수가 이동하면서 시간차 공격을 만들어 낼 때도 있다. 이동공격이라고 하는데 공격수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이동해 상대 블로커들의 블로킹 타이밍을 교란시키는 시간차 공격이다. 개인 시간차 공격도 있다. 이때 공격수는 세터가 토스할 때 공격수 스스로가 점프 타이밍을 조정해 공격에 시간차를 두는 공격이다. 보통 상대 블로킹이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타이밍에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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