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에 친구가 보내준 편지를 다시 꺼냈다. 짧지만 따뜻했다. 편지 같은 편지였다. 편지를 잘 쓴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받고, 써온 편지는 누구야 안녕, 우리 어떻게 만났지, 그동안 이러이러한 것들을 함께 해서 기쁘다,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자의 틀을 완벽하게 갖춘 편지였다. 주로 친구들의 생일에만 편지를 주었고, 내 생일에만 편지를 받았다. 어렸을 땐 편지를 받는 게 좋았다. 손편지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도 같다. 이젠 생일 편지를 쓰지 않는다. 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랜만에 받은 손편지를 본 순간부터 기분이 좋았다. 우편함에서 편지를 가져왔던 게 나였는지, 아니면 가족들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편지를 받아들고 기분 좋은 숨을 들이켰던 기억은 생생하다. 봉투도 아주 조심조심 뜯었다.
문학의 구절을 인용한 편지는 처음이었다. 처음 편지를 읽었을 때 그 구절의 의미는 잘 몰랐다. 사실 지금도 완벽히는 모르겠다. 그댄 어떤 구절을 인용했다는 것보다는 그 밑에 써져있던 편지의 내용에 더 집중했었다. 짧지만 따뜻했고, 짧지만 꽉 찬 편지였으며, 나와의 관계에 대한 편지였다. 앞에 말한 틀을 지킨 편지가 가짜 편지는 아니겠지만(...가짜편지 맞을 수도? 결론은 생일 축하해이고, 편지에 써넣은 말들은 편지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말들이니까?) 2월에 받은 편지가 훨씬 진짜 편지, 편지 다운 편지처럼 느껴졌다. 그 진짜 편지가 주는 감각이 너무도 낯선 감정을 일으켰다. 감동이다, 좋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감정들이었다. 그래서 편지를 여러 번 읽고 나서는 엄마에게 달려가 나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자랑도 했다.
다시 읽었을 땐 편지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읽을 때와 다르게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그 구절을 읽고 나에게 전해주고 싶었다는 문장이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 글을 또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때의 기쁨과 벅참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또 책을 읽다가 내 생각이 났다는 것도 기분 좋았다. 내가 그 친구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그 친구도 나와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2월에 편지를 읽고 바로 카톡으로 짧은 답장을 보냈다. 그 구절을 담고 있는 소설을 꼭 읽어 보겠다고 했다. 거의 1년이 다 되어서야 책을 빌려왔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시를 소설로 읽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그 느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책을 다 읽으면 답장을 써야겠다. 그 책에서 친구에게 보내줄 구절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편지에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게 그때보다 더 늘었다고, 그래서 정말 즐겁다는 이야기를 꼭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