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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옆 수첩과 볼펜

핸드폰을 멀리하고 나서부터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을 적을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아날로그 인간이 되기로 했다. 핸드폰 대신 수첩과 볼펜을 항상 내 곁에 두고 있다. 예전에 사놓고 쓰다 만 수첩을 벌써 두 개나 다 썼고, 이제는 세 번째 수첩에 내 생각들을 채워나가고 있다. 수첩에는 쓰고 싶은 글의 조각들,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냥 순간 깨달아지는 것들, 놓치고 싶지 않은 생각들,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들, 내 꿈과 소망, 그날 꾼 꿈, 내 칭찬 등 많은 것들이 적혀 있다. 낮에는 책상이든 어디든 항상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수첩과 볼펜이 있고, 잘 때도 마찬가지다. 베개의 왼쪽 자리는 이제 수첩과 볼펜의 자리가 되었다. 그 옆에는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뒤집은 다음 컵의 바닥을 뚫어 이제는..

2021.03.23

현실로 돌아온 공상가

나는 공상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망상에 가까운 공상이었다. 공상 속에서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된다. 나는 못하는 게 없는 ‘천재’이고, 사람들은 다 나를 좋아하고, 동경하고, 본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일 뿐 아니라 인간관계 역시 원만하다. 어려운 일은 척척 처리하고, 가끔은 겸손하기도, 가끔은 자신감 넘치기도 한다. 어쨌든 그 세계에서 누구보다 완벽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공상하느라 해야 하는 일도 몇 시간씩 미루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공부하다가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공상을 했다. 공상하는 것은 매일 꼭 해야 하는 일과로 자리 잡았다. 공상은 나에게 순간의 만족감을 주었다. 즐겁기도 했다.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다. 공상하고 나면..

2021.03.21

만년필을 쥔 손으로

과녁 님의 글 「펜 끝으로도 마음을 쫓아갈 수 있을까요?」를 읽고 방 안 어딘가에 있던 만년필을 찾아냈다. 글을 처음 읽었을 땐 필사와 글씨 연습에 관한 대목이 마음에 닿아서 '만년필'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만년필을 쓰고 싶어졌나 보다. 글을 읽은 다음 날 가지고 있던 만년필에 맞는 컨버터와 잉크를 주문했다. 잉크 색깔은 블루 블랙. 하필 설 연휴 바로 전날에 주문하느라 배송받기까지 오래 기다렸다. 컨버터와 잉크가 도착하고 바로 만년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만년필로 글씨 쓰는 게 좋아서 아침과 밤에 쓰는 일기는 물론이고 안 쓰던 독서 노트까지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곧바로 노트에 적고 있다. 덕분에 필사도 많이 하고 있..

2021.03.14

그의 뒤에서 나는

친구와 시를 나누던 그는,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였을지도 몰랐던 그는, 남성 신의 노예가 되었다. 고통이 그를 노예로 만들었다. 고통에 빠진 사람은 의지할 존재를 찾는다. 그는 자매가 아닌 신을 따라갔다. 그는 신과 함께 하는 고통 없는 영원한 삶을 꿈꾼다. 신의 응답을 기다린다. 천국을 원한다. 나는 알고 있다, 그와 나는 같은 길을 함께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모든 걸 알고 있어도 그를 보면 가끔 숨이 막히고 슬퍼진다. 나는 남성 신을 찬양하는 그의 뒤에서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노래를 들으며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시를 옮긴다.

2021.03.14

꿈이 확신을 주는 순간

오늘 꿈을 꿨다. 오늘도 꿈을 꿨다. 내가 꾸는 꿈은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항상, 아주 충실히 반영한다.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마감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았을 때, 그런데 그 해야 하는 일을 다 끝내지 못했을 때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꾼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숨는다. 그 움직임은 빠르고 급박하게 나타난다. 깨어있을 때 느낀 조바심을 꿈에서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어제는 조바심을 느끼지 않았다. 어제는 할 일을 다 마쳤고 오히려 여유로운 일요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누웠다. 이런 상태일 때는 꿈을 안 꾸거나 그냥 개꿈을 꾼다. 공상과학 같은 말도 안 되는, 깨고 나면 기억도 잘 남지 않는 꿈들. 그래서 오늘 꾼 꿈이 더 신기하기만 하다. 꿈속 배경은 학교, 아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

2021.03.07

취급주의

요즘 몸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반응합니다. 몸이 나 힘들다, 아프다 말하는 거겠지요.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서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억울합니다. 남들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에는 내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것도 같고, 쌓이면 해소하는 방법도 잘 아는 것 같은데 저는 그러지 못해서요. 애초부터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부터 조금 원망스럽습니다. 어렸을 때도 큰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크게 아프곤 했거든요. 원인은 스트레스로 추정되는 아픔들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왜 이 정도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하는지 스스로에게 화도 납니다. 더 이상 스트레스 때문에 아프지 않았으면 좋..

2021.02.14

달리기

달리고 싶다. 얼마 만에 든 생각일까. 두 다리를 움직여 걷거나 뛰는 일이 가장 귀찮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나가서 산책이라도 좀 하라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고, 외출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만 겨우 몸을 일으켰다. 작년까지도 그랬다. 나가는 게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었다. (아무리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D 결핍이라지만) 비타민D가 정상 수치보다 너무 낮다는 결과를 듣고 나서야 여자들이 하는 건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산책도 자주 하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그 후로 조금씩 나가기 시작했다. 꾸준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바깥으로 발을 옮기는 횟수가 늘었고, 종종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는 달리고 싶었다. 방금 본 별똥별을 엄마에게 빨리 보여주고..

2021.02.13

메모보드

책상 앞 하얀 메모보드. 하얀 종이와 알록달록 동그라미 자석들로 덮인다. 올해의 계획, 잊지 못하는 추억, 이번 달 달력,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 나를 자극하는 글귀가 한데 섞여 덕지덕지 붙어있다. 메모보드 한 쪽에 나란히 붙여져 있는 자석들이 새 종이를 기다린다. 매일 보지만 매일 읽진 않아. 그저 붙어 있는 거야, 그저 붙여 놓는 거야. 한 번 정리하고 나면 잠시 동안은 깨끗하지만 이내 다시 더러워지는 이유는 나는 계속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잊지 않아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그래.

2021.02.07

산책

햇볕을 쬐려고 나왔는데 햇빛은 별로 못 봤다. 지금 햇빛을 등지고 앉았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마주 앉긴 싫어서. 셔터를 두 번 눌렀다. 내 그림자와 어렸을 적 뛰어놀던 놀이터. XX와도 잠시 머물다 갔던 곳. 내가 기억하기로는 내가 처음 봤을 때에서 두 번 바뀌었다. 하지만 의자는 그대로야. 주황색 페인트칠이 벗겨지면 덧칠할 뿐. 의자를 없애진 않아. 밖에 나와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네. 수첩에 볼펜으로. 근데 사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근데 사실 사람들은 나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진 않을 거야. 돌아앉자. 산책로를, 햇빛을 마주했다. 역시 그냥 지나가네. 나한테 닿는 시선은 없어. 10분을 앉아 글을 썼어. 오늘은 좀 춥다. 놀이터 모래를 밟아볼걸. 계단을 올라오며 생각했다. 현관 앞에서 신..

2021.02.05

성실비언 칭호를 얻었다!

제가 드디어 성실비언이 되었습니다! 글쓰기를 미루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는데 주 3회 글쓰기 미션을 클리어하고 나면 얻게 될 뱃지와 성실비언 칭호가 저를 움직였어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가장 큰 목표를 '성실'과 '꾸준함'으로 잡았는데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기뻐요. 이제 2월이긴 하지만요. 8기 뱃지를 얻었으니 이제 주 3회 글쓰기 미션을 업그레이드(?) 해보고 싶어요. 주말에 부랴부랴 글 3개를 몰아 쓰는 대신 평일에 조금씩 써서 업로드하는 게 저의 새 미션입니다. 당연히 9기 뱃지도 꼭 가질 거고요. 참여하고 있는 레즈라이트 내 소모임 매생이 클럽에서도 1월 노펑크를 달성했답니다. 일상 속의 작은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언젠간 저도 성실비언, 꾸준비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날이 오겠죠!..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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